[한경과 맛있는 만남] 김영문 "39년 만의 검사 출신 관세청장…'문재인 수석' 시절 靑서 인연"

입력 2019-09-20 17:15   수정 2019-09-21 01:07


이달 초 대전 둔산동 정부대전청사 앞 곰장어 구이집.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가운데 김영문 관세청장(55)이 우산을 접으며 들어섰다. 김 청장은 “부산에서 고등학교 다닐 때 야간자율학습을 몰래 빠진 뒤 친구들과 먹던 ‘꼼장어’가 생각날 때마다 찾는 곳”이라며 “자갈치시장에서 먹던 맛과 비슷하다”고 웃었다.

김 청장은 “2년여 전 관세청장으로 부임한 뒤 직원들에게 서비스 마인드를 불어넣는 과정이 가장 힘들었다”며 “관세청이 세금을 거두는 곳이 아니라 통관 서비스를 집행하는 기관이란 점을 지금은 직원들이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시골 출신 대기만성형 수재

김 청장이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은 경남 울주군(현 울산 울주군)의 작은 농촌마을이다. 수십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살던 마을은 KTX 울산역 등이 생기면서 사라졌다. 그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친구들과 떨어져 부산으로 전학을 갔다.

김 청장은 “부산 형님 집에서 학교를 다녔는데 처음엔 성적이 썩 좋지 못했다”며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는 수학 6문제를 풀면 겨우 1~2문제를 맞히는 수준이었다”고 했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공부에만 몰두하지는 않았다. 주말마다 고향을 찾아 부모님의 농사일을 돕곤 했다.

학창 시절을 추억하다 보니 곰장어가 노릇하게 구워졌다. 그는 “냉동이 아니라 수족관에서 바로 꺼낸 곰장어를 숯불에 올려야 제맛이 나는데 여기가 바로 그런 곳”이라며 “그냥 소금만 살짝 뿌려 먹는 걸 좋아한다”고 말했다.

김 청장은 초량중(현 부산중)을 거쳐 부산의 명문으로 꼽히는 경남고(37회)에 진학했다. 문재인 대통령(25회)의 고교 12년 후배다. 그는 “수업시간에 집중하고 12시간 내 반드시 복습하는 식으로 공부했더니 수학 공식 등 원리가 비로소 이해됐다”며 “지금 생각해보니 나는 대기만성형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대입 학력고사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둬 장학금을 받으며 서울대 공법학과(83학번)에 입학했다. 출신고는 물론 고향 마을에도 축하 플래카드가 붙었다. 집안에서 유일하게 대학에 진학한 사람이었다.

원희룡 조국 등과 같이 학생운동

법대 입학 후엔 반 대표로 활동했다. 당시 시대 분위기를 타고 자연스럽게 학생운동에 참여했다. 같은 과 선후배인 원희룡 제주지사, 조국 법무부 장관,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등과 잘 알고 지냈다. 김 청장은 법대 동아리연합회 회장을 맡기도 했다.

“3학년 1학기까지 ‘지하’ 공부모임에서 활동하다 갑자기 휴학했습니다. 운동권에선 사실상 도망친 것과 마찬가지였죠. 잡히면 감옥에 가는 게 수순이었거든요. 지금까지 미안한 마음이 있습니다.”

김 청장이 상기된 얼굴로 소주잔을 기울였다. 그는 “친구 따라 카투사(KATUSA: 주한 미군부대에 근무하는 한국군)로 복무한 뒤 본격적으로 사법시험을 준비했다”며 “합격 후 검사직을 지망하자 친한 후배들이 ‘변절했다’고 공격했는데 난 생각이 달랐다”고 했다. 사회 정의를 실현하는 방법이 다양하고, 검사로서 사회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믿음에서다. 다만 ‘법과 원칙’에 대한 신념은 예나 지금이나 확고하다고 했다.

“후배들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누군가 구속해야 할 사유가 생기면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묻더군요. 당연히 법에 따라 처리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김 청장은 부산지방검찰청에서 검사 생활을 시작했다. 현실은 ‘이상’과 너무나 달랐다. 그는 “처음 업무를 맡았을 때 한 달에 300건 정도의 사건을 처리해야 했다”며 “단 한 명도 억울한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하겠다는 초심이 과다한 업무량 속에서 점차 희석됐다”고 아쉬워했다.

김 청장은 “검사로 20여 년 일하면서 스스로 권력을 가졌다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며 “법대로 했다”고 강조했다.

문재인 대통령과의 인연도

“어떤 검사였느냐”고 물으니 대뜸 ‘검사와 여선생’이란 영화를 본 적이 있느냐고 되물었다. 김 청장은 “남편을 죽였다는 살인 누명을 쓴 여성이 옛 제자의 도움으로 석방되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라며 “어떻게 보면 법 앞에 사람이 있고 법에도 정답이 있는 게 아니란 얘기”라고 했다. “그런 점에서 난 성공한 검사는 아니었다”고 덧붙였다.

“절도죄로 복역한 전과자가 고물 수집 일을 했는데, 1999년의 어느날 주택가에 있던 구리 전선을 가져갔다가 잡혔어요. 기껏해야 1만원어치도 안 되는 고물을 훔쳤다는 이유로 나는 징역 3년형을 구형했고, 판사는 2년형을 선고했지요.”

이듬해 캐나다 밴쿠버에 있는 브리티시컬럼비아대(UBC)로 연수를 떠났다. 연수기간에 이 사건이 자꾸 생각났다고 회고했다. 김 청장은 “이 사건이 너무 형식적으로 다뤄졌고, 상습범이란 이유로 사회적 약자에게 가혹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며 “속된 말로 쪽팔렸다”고 했다. 소주잔을 채우던 김 청장이 갑자기 안경을 벗고 이마의 땀을 훔쳤다. 그러면서 “뒤늦게 깨달았지만 때론 법에도 온정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김 청장은 형사 및 기획 분야에서 일을 많이 했다. 법무부 및 청와대 파견 등이 잦았다. 노무현 정부 땐 청와대 민정수석실 행정관으로 근무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민정수석으로 일할 때였다. 그는 “당시 문 수석이 경남고 후배가 배치됐다니까 ‘또 오해받겠네’라며 마땅치 않아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철저하게 공과 사를 구분하더라”고 웃었다. 민정수석실에서 일하며 황우석 줄기세포 논란, 바다이야기 게임 사건 등을 집중적으로 조사했다.

일선 검사로 복귀한 뒤엔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첨단범죄수사부를 거쳐 대구지방검찰청 서부지청 형사부 부장검사로 부임했다. ‘검사의 꽃’으로 통하는 검사장 승진을 앞두고 있었다. 회의감이 밀려왔다. 그는 “검사장이나 지청장은 사법행정의 책임자이자 행정가여야 하는데 많은 선배가 그냥 ‘검사’ 역할에 머물러 있었다”며 “똑같은 길을 걷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미련 없이 사표를 던졌다. 후배 권유로 약 2년반가량 로펌(법무법인 지평) 변호사로 일하다 다시 공무원이 됐다.


성과 정량지표 없앤 파격 실험

“관세청장으로 부름받기까지 몇 가지 우연이 겹쳤던 것 같습니다. 당시 관세청이 면세점 선정 과정의 비리 문제로 지탄을 받았는데 검사 출신이 제대로 기강을 잡아야 한다는 분위기가 있지 않았을까요.”

2017년 7월 관세청장이 된 그는 1978년 최대현 청장 퇴임 이후 39년 만에 지명된 검사 출신이다. 취임 일성은 ‘혁신’이었다. 직원들에게 “법조문에서 가장 중요한 건 제1조 목적”이라며 “관세청이 설립 목적을 완수하려면 각자 일의 의미와 목적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또 “관세청이 환골탈태하려면 밑에서부터 혁신해야 한다”며 “무조건 변화하는 게 아니라 제대로 일하는 게 혁신”이라고 강조했다. 관세행정은 ‘신속한 통관’보다 국민 안전이 중요하고, 관세 징수보다 국경 관리가 핵심이란 의미다. 관세청에선 자신도 모르게 관세 징수 실적이나 신속한 통관을 앞세우는 게 관행으로 굳어졌다는 게 김 청장의 지적이다.

그가 작년 5000여 명의 관세청 직원을 대상으로 한 성과 평가지표(CPM)를 전면 폐지하겠다고 발표하자 대부분 반신반의했다. 김 청장은 “직원 평가 때 점수를 앞세우면 필연적으로 실적을 채우려고 노력할 테고 입·출국자들의 통관 불편이 커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라며 “국민을 위한 봉사기관으로 바뀌려면 일종의 충격 요법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밀어붙였다”고 말했다.

직원들이 ‘높은 평가’를 받기 위해 면세 한도(1인당 600달러) 초과자를 적발하려 수하물 검사를 까다롭게 하는 등 부작용이 생겼다는 게 김 청장의 얘기다. 성과지표 폐지 후 관세청의 서비스가 개선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김 청장은 “관세청의 행정 개선이 국민의 피부에 와 닿을 수 있도록 내부 시스템을 더 바꿔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관세청은…

국경 ‘최후의 관문’을 지키는 중앙행정기관이다. 관세 징수와 수출입 통관, 밀수 단속 등을 맡고 있다. 1948년 재무부 세관국을 거쳐 1970년 관세청으로 독립했다. 기획재정부의 외청이다. 밀수에 대해 사법 경찰권을 갖고 있으며 직접 수사도 한다. 인천·김포·김해공항 등 전국에 29곳의 세관이 있다. 직원은 작년 말 기준 5007명이다.

올해 관세 규모는 59조6000억원이다. 전체 국세(294조8000억원)의 20.2%다. 관세청은 지난해 한진가(家) 밀수 및 북한산 석탄 밀반입 수사로 집중적인 관심을 받았다. 최근엔 이재현 CJ그룹 회장 장남인 이선호 씨의 마약 밀수를 엑스레이 검색으로 잡아내 화제가 됐다.

■김영문 관세청장 약력

△1964년 경남 울주군 (현 울산 울주군) 출생
△경남고, 서울대 공법학과 졸업
△1992년 제34회 사법시험 합격
△대구지검 검사
△청와대 사정비서관실 행정관
△대구·수원지검 마약조직범죄수사부 부장검사
△법무부 법질서선진화과장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1부장
△대구지검 서부지청 형사1부장
△법무법인 지평 파트너변호사
△2017년 7월~ 관세청장



김영문 청장의 단골집 새벽산꼼장어

주문 즉시 잡는 곰장어…숯불에 구워 고소한 맛 일품

대전 월평동에 있는 새벽산꼼장어는 곰장어 전문점이다. 가게에 수족관을 갖추고 싱싱한 곰장어를 맛볼 수 있도록 했다. 대표 메뉴는 곰장어 소금구이다. 산 채로 손질한 곰장어를 숯불에 구워내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남해에서 가져온 국산 곰장어와 미국산 곰장어 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 산지에 따라 가격이 다르다. 구이와 곁들여 먹을 수 있도록 새콤한 채소무침이 나온다. 시원한 콩나물국을 곁들이면 맛이 배가 된다. 부인 길외순 씨(59)와 10년 넘게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정성권 사장(63)은 “국산 곰장어를 맛볼 수 있는 가게가 귀하다 보니 멀리서 찾아오는 손님도 적지 않다”며 “국산 곰장어는 외국산에 비해 육질이 단단해 식감이 쫄깃하다”고 말했다.

직접 만든 고추장 양념에 파 마늘 양파와 함께 먹장어를 볶아낸 철판볶음도 인기다. 곰장어를 담백하게 쪄낸 수육 역시 단골이 꾸준히 찾는 메뉴다. 정 사장은 “정부세종청사와 인근 관세청, 통계청 공무원들이 퇴근 후 기력을 보충하러 오곤 한다”며 “철도청이 이사 가기 전에는 철도청 직원들도 단골이었다”고 했다.

조재길/구은서 기자 roa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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